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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이 노래는 십오 년 전쯤, 어느 봄날의 교무실에서, 좋다고 느낄 사이도 없이 짧은 순간 스치며 지나가듯 만났다. 여느 중학생이 그러하듯 혼자만 무엇이 다른 듯, 남들에 비해 성숙했다고 여겨지는 느낌을 좋아했는데, 알 수 없이 난해했지만 친근한 단어로 쓰인 가사가 마음에 들었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와 혼자 잠에 드는”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적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나는 비록 느리고 작은 달팽이라 한번도 바다를 본적이 없지만, 매일 동트기 전 새벽에 깨어나 무엇인가를 알 수 없이 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잠을 들 수 없었던 소년의 생각에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생겨났었다.

  어느 사이엔가 세월은 훌쩍 흘러 나는 홀로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에 비하여 그리 대단한 성숙함을 가지지 못하였다. 담대함으로 껍질을 깨뜨리는 용기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아침에 일어나 또 다시 무엇인지 모를 것을 향한 채비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그저 다른 수백만의 달팽이들처럼.

  아주 오래 전에는 선명하고 청량하게 들렸던 파도 소리는 이제 익숙함 때문인지, 세상의 번잡함 때문인지 점점 희미해지고 들려오는 방향조차 알기 어려워졌다. 호기롭게 ‘영원함’을 외치던 스스로는 이제 그 약속을 머쓱하게 물린 채 조건을 하나 둘 달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한 달, 두 달이 지나 이제 일년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리를 저으며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목표 없는 시선을 던져서는 안되겠다. 멀리 떠나 해답을 찾으려 한다던가, 의미 없는 대화의 반복 속에서 실마리를 잡으려 해도 안되겠다.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가 정한 저 알 수 없는 내면의 외침 중 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겠다.

  실패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를 선사했고, 쓰러짐은 내 두 다리를 더 굳건하게 만들 의욕을 선사했다. 내가 20대에 흘린 수천 시간의 땀방울이 꼿꼿한 걸음걸이를 준 것처럼 미래에 생길 수천 시간의 쓰라림과 부끄러움은 나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나는 시간을 먹고 사는 달팽이가 되어서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질주해야겠다. 나를 테스트할 시점은 끝나고 본 게임이 시작되려 한다.

Posted by Hwijung

2010/07/22 22:10 2010/07/2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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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빛날 수 있을 것 같았던

‘반짝이는 사람’

내게 ‘輝’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를 위해 노력하고 달리고, 참고, 이겨내고.
“아버지 보고 있나요?”

“내가 반짝이면 나를 원하는 누군가가 분명히 내 옆에 있어줄 거야.
내 따뜻함을 바라는 누군가가, 내 눈부심을 동경하는 누군가가.”

거울만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한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 순간부터 나는 빛을 잃고 초라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빛이 나에게 반사되어 빛나게 하는 것을,
그 동안 스스로 빛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가장 큰 광원. 하나를 잃었다.

지난 2년 동안 나에게 주어졌던 과분할 정도의 따스함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남은 것은 말라붙은 눈물자국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닌 누군가의 발자국이었다. 겨우 공기 중에서 나마 내음과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반드시 여기가 아닌 세상 어딘가에 그 따스함이 자리할 곳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뽐낼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많은 시선 들 중 하나가 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나를 일깨워준 따스함에 그 동안 하지 못한 말 존경을 담아.

Written & Performed by Hwijung

Posted by Hwijung

2010/05/04 23:44 2010/05/0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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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즐기게 되면, 무엇인가라면 보통 어떤 다른이의 창작물, 자연스럽게 창작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음악을 들으면 내가 악보 위에 휘갈기면 교향곡이 나올 것 같고, 그림을 보면 내가 캔버스 위에 휘갈기면 박물관에 소장될 것 같고, 또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영화를 찍는다면 틀림 없이 오스카 상을 받을 것 같고. 뭐 뜬구름 잡는 상상이 모락모락 피어나지만 그 밑에는 무엇인가 창작열이라는 것이 끓어 오른다.

하지만, 조금 더 심취해서 남들의 창작을 두루 섭렵하다 보면, 세상에는 너무나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고, 이러한 화려한 작품에 비해서 나의 창조적 상상력은 빈약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깨달아 좌절하게 된다. 내가 모짜르트보다 뛰어나지 못할 확률이 100%에 가까운데, 내가 뭘 만들어서 어디다 쓰겠어.

게다가 이런 나약한 생각따위 신경쓰지 않고 무엇인가를 여차여차 시도한다고 치자. 그렇게 태어난 창작물이 과연 내가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남이 만든 것을 어설프게 짜깁기 한 것은 아닌지. 순전히 내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상황에 처하기 일쑤다. 음악은 어디서 들었던 것 같고, 그림은 어디서 봤던 것 같고, 글은 왠지 누군가를 따라 한것 같은 냄새가 난다. 원숭이에게 크래파스를 주고 그린 그림보다 내 그림이 나은 것은 내가 ‘인간’ 이기 때문이지 내가 예술적인 상상력이 원숭이보다 뛰어난 것은 또 아닌것 같단 말이지.

순전히 내 힘으로 만든 무엇인가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지 상상해 보았다. 가능하다면 내 일생의 목표로 삼아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일단 씨를 뿌려서 나무를 키워야 겠다. 물과 햇빛은 누군가 다른이가 만든 것은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다. 이를 베어내서 종이를 조금 만들어야겠다. 자연에서 염료를 채취해서 여기다가 무엇을 써보자. 하긴 글자라는 것도 무료 배포되고 있을 뿐이지 과거의 인류가 만들어낸 것이었다면 문제가 된다. 그러면 그림을 그려야 겠다. 그림으로 무엇인가 메시지를 담으면 이것들은 인간 ‘류휘정’의 순수 창작물이 아닐까? 그런데 이 메시지라는 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추적해보면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내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내가 교육되고 인간으로 사회화된 내용이 조금도 포함되어있지 않은 메시지라는 것이 어디 있지? 삑. 여기서 막혔다.

내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에야 세상은 역시 다른 사람에 의해 (현대인 혹은 고인) 물질화 되거나 추상화된 산물들의 집합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Basic Elements 들의 재조합이지 이미 이러한 Element를 새로 만들거나, 디자인 하는 일 조차도 힘든 상황이다. 너무 레드오션이다. 나는 순수한 창작을 꿈꾸지만 현실은 지루한 LEGO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LEGO로라도 멋진 작품을 만들면 박수는 받겠지만.          

Posted by Hwijung

2010/01/24 23:03 2010/01/2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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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것은 8할이 Complex

  우리 동네 초등학교 뒷쪽에, 굵은 철사줄로 칭칭 동여맨 을씨년스러운 녹슨 대문과 마당에 수북히 쌓인 낙엽 가득한 낡은 집 한채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노래했다. 나는 그처럼 홀연히 살지 못했기에 뒤돌아보면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컴플렉스라고 노래 해야겠다. ‘바람’처럼 닿은듯 닿지않게 너울너울 살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나를 키워온 것이다.

  근래의 김연아아사다 마오를 보면 승부를 초월한 승자와 처절한 패자를 보게된다. 승자는 이미 여유로운 입장이고 아래에 위치한 옛 라이벌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경쟁이라고는 생각치 않을 것이고, 오히려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는 태연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 남았다.”라는 인터뷰도 할 수 있다. 뭐 어떠리, 내가 최고인걸. 패자는 아마 눈을 감으면 승자의 얼굴이 보일 것이고 눈을 뜨면 눈물이 흐를 것이다. 물론 그 자리에 자신이 예전에 있었다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경쟁과 컴플렉스는 온전히 패자의 것이 된다. 영원히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할지,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서 언젠가는 왕좌를 탈환할지 하는 것은 순전히 패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경쟁이 상호 발전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이기도 하다. 물론 공정한 경쟁일때 그렇다. 대부분은 승자는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패자를 더 찍어 누르려고 한다. 패자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고려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컴플렉스다. 컴플렉스는 패자를 위한 Cheer-up이자 승자에게 대한 Panelty이다. 카 레이싱에서는 앞서 달리는 차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공기 저항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비록 2등이지만, 나는 무언가를 더 지니고 있다. 컴플렉스는 상호 발전이 아니라, 느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에너지다. 마음을 쿡쿡 찌르는 듯한 아픔을 어떻게 이용할지,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한 선택은 중요한 일이다.

  컴플렉스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다고 술로 푸는 것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을 잠시 세상의 현실과 괴리시키는 것이다. 좋은 방법은 1등의 발자국을 하나 하나 따라가면서 언젠가 있을 과거의 내가 패배한 경쟁과 다른 변수를 대비하는 것이다. 물론 손쉬운 방법은 아니다. (세상에 손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있다 해도, 대부분은 ‘더’ 손쉬운 방법이 있거나,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현재 위치에서는 내가 1등이 될 수 없지만, 경기의 규칙이 바뀌거나, 나는 더 오랫동안 무엇을 할 수 있다거나, 나는 더 심리적으로 강한 사람이거나 하는 장점을 하나 갖추면 언젠가는 그 요소가 당신에게 승리자 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인정하기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나도 타이틀과 같이 수많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 중에 하나다. 공부나, 운동이나, 영어나, 외모나, 화술이나. 지금 생각해보면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앞선 출발점에서 스타트를 끊은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보다 뒤쳐져 있었고, 등을 보고 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컴플렉스를 이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배웠다고 생각한다. 다른이의 장점에서 자신의 단점을 보고 이를 바꾸기 위해서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일이다. 하지만, 이 마음에 컴플렉스라는 연료를 붓는 것은, 그리고 이 불이 꺼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내 경험상, 그리고 주위를 관찰한 결과 쉬운일은 아니다.

  이 외연기관의 엔진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서 미장이가 벽돌을 쌓듯 조금씩 조금씩 차곡차곡 나를 쌓아나가는 작업은 내가 기쁨을 느끼는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큰 하나의 방법이다. 매일같이 달리는 런닝머신 위에서 나는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더 나은 미래의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웠으니 미래로는 달려가고 있는 꼴이다. 조금이라도 나를 바꾸어 보겠다고 아무것도 아닌 발버둥을 치는 모습은 측은해 보이기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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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9 18:29 2009/11/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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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 무서운 이유

  네모 반듯한 철제 사각통들의 행렬을 보면 어떤 인간미도 느낄 수가 없다. 드러나는 것은 헤드라이트를 켰나, 브레이크를 밟았나, 어느쪽으로 갈 것이다 등을 알려주는 빛의 디지털 시그널 뿐. 그나마도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할 뿐, 나에게 자상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은 오직 나 뿐이다. 같이 투덜거릴 수 있는 동승자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처음부터 사람이라는 존재를 배제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욕하고, 시덥지 않으면 클락션을 울리고, 얌체같은 짓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뭐 어때, 나는 완벽하게 보호 받고 있고 도로위의 순간적인 만남일 뿐인데.”

  너무 슬프다. 운전하기 겁이 난다. 내가 같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웃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계 속에 앉아서 나를 “번쩍번쩍”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믿기 싫을 정도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때문에 조그만 인간적인 면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비상등을 감사의 의미로 표시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나는 항상 양보를 하고 다른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뒷 유리창에 붙여둔 개성 넘치는 스티커와 운전 스타일에 어떤 사람이 운전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꽉 막힌 도로 위에서도 사람들은 그렇게 차에 동화되어 나에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그들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얼마전 퇴근길 교대 역에서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의 인파를 만났다. 어깨가 겹치고, 머리가 가리고, 몸이 부대끼고, 발을 밟혔다. 앞 사람을 보면서 한발한발 내딛으며,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고, 걸음을 내딛는 각자의 개성 넘치는 소리만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문득 교통 정체로 꽉 막힌 도로 위에 차 속에 나혼자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얼굴을 읽었다. 일그러진, 불만이 가득한, 화를 내는,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 “이게 자동차 속의 사람들의 모습이구나.”

  운전은 한층 더 무서워졌고, 나는 무표정하게 운전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소통의 부재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언젠가 자동차는 더 사람 냄새나는 탈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목소리를 차와 차 사이에 전하고 싶다. 클락션이 아닌 목소리가 왁자지껄한 도로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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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8 13:24 2009/10/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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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최강희의 생존법

  얼마전 무릎팍 도사를 보는데 배우 최강희가 나왔다. 상대우위를 점한 미모를 가진것도 아니고 나이도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서 많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꾸준히 연기자로서 관객에게 선을 보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된 비결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필요에 의해 쉬지 않고 일했는데, 주위에 같이 시작한 친구들은 하나씩 떨어져나가고 결국 저 혼자 남았어요.”

  그녀의 성공은 본인의 성실함 때문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의 변덕때문이기도 하겠다. 나처럼 능력은 모자라지만 꾸준한 것 하나만 믿고 가는 사람에게는 왠지 희망의 메시지처럼 들렸다. ‘배우’라는 성공과 실패가 극명하게 갈리는 직업군에서, 또 실패의 비율이 현저하게 높은 곳에서 ‘성실’이 가지는 강점을 내가 일하고 있는 이 다소 다른 환경의 장소로도 끌고와 극대화 시킬 수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매달 입급되는 월급만으로도 가지고 있는 꿈과 희망이 늘 과거형으로 충족되는 그런 상황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다른 상황이라는 것이 ‘최강희’스러운 삶의 태도가 내가 속한 곳에서는 다소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나처럼 꾸준할 것이고 기회는 더 적게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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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11:05 2009/10/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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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번호 변경

  2001년, 휴대폰을 처음 만들때부터 사용해온 나의 소중한 016 번호를 얼마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 2G 사용자이자, 마지막 016 유저로 남기를 원했지만 회사에서 법인명의의 회선을 개통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번호를 변경해야 했던 것. 오랫동안 지켜온 나의 소중한 번호여, 지.못.미.

  덧붙여 공짜폰은 많이 들어봤지만, 공짜 이용폰이 있다는 이야기는 얼마전에 처음 들었다. 바로 회사에서 사용하는 소위 “업무용” 요금제가 그것. 기본료가 15000원이지만 사실 청구되지는 않는다. SMS와 통화료, 그리고 데이터통화료가 무료로 통신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자그만한 복지라고나 할까. 글쎄 자그만 하다고 볼 수 있을지.. 지금도 교실에서 알을 수없이 까고 있는 수많은 대한민국 중고딩들의 로망. 월말이 되면 다 쓴 무료 통화 시간 때문에 전화하기 꺼려지는 커플들의 로망. 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전에는 상상하지 않았던 이용 방법들이 휴대폰에서 톡톡 튀어나오니까 좋긴하다.

  이를테면, 버스 정류장에서 다음에 올 버스가 있는지 여부를 알아본다던가, 주변에 있는 여러가지 식당이나 상점의 정보를 파악한다던가. 뉴스를 보고 고속도로 상황을 체크한다던가. 이런 것이 다 가능하게 된지 꽤 됐었는데, 그 놈의 비싼 요금 때문에 사람들이 아직도 휴대폰의 SHOW 버튼을 금기시하게 된 것이다. 이 금기가 풀리는 순간, 사람들이 자유롭게 무선인터넷을 즐기는 순간이 통신회사로서는 또 한번의 기회랄까?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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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1 20:54 2009/09/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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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항상 [ ]를 좋아한다

새로운 회사에서 업무를 따라잡아야 하는 과제와 더불어 수십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친해지는 내 특성상 이것 또한 만만치 않게, 어쩌면 업무 관련 보다 더 힘든 것 같다. 항상 “나와 대화하고 있는 이 분은 이것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내가 이렇게 하면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나를 안좋게 보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고 느려지며 더 불행하게도 왠지 어색한 티가 나고야 만다. 몇 주간의 이러한 답답한 행동과 주눅듦을 주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생각하니 차라리 이러느니 내 맘대로, 나의 Identity를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인은 항상 [    ]를 좋아한다.” 라고 자기최면을 걸기로 했다. 화장실 빈칸에 가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나온 결론이다. 건방진 내 모습, 일찍 퇴근하는 내 모습, 인사할 때 어색하게 웃는 내 모습, 어리버리하게 무엇이든지 물어보는 내 모습. 머리 위로 떠올려보니, 뭐 괜찮다. 이해된다. 다 지금 내 모습과 어울리는 것들이고, 꽤나 신입사원 다운 모습이다. 내 자신의 위치에서 나 다울 때 주위의 호의적인 눈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들은 항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명하고, 겉의 모습이 아닌 내 속에 가진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알아줄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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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22:51 2009/09/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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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

불쌍히도 버림 받은 블로그.
7월동안 유럽여행을 가고, 8월 내내 회사 입사 관련해서 일 처리 하다보니 그야말로 여유가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블로그에는 신경도 못쓰고 있었다. 아직 당분간은 자리를 잡을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앞으로도 블로그에 대량의 포스팅을 불가능하지 않을까. 프로필도 업데이트해야하고 동유럽 여행기도 올려야 하고, 회사 생활도 소개하고 싶지만 아쉬운건 마음이요 모자란건 시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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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1 12:57 2009/08/2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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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잘하게 생겼다. 도대체 어디가?

오늘은 증명사진을 찍었다. 품질이 중요한 사진은 아니었기에 검색 끝에 시장 끝자락 어드매인가 조그만 30년 경력을 자랑하는 사진관, 간판만 최신식으로 바꿔 단 곳을 찾아갔다. 사진은 적당히 찍고 구형 컴퓨터에서 여러장의 내 사진중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는지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나이 지긋하신 주인장 아저씨. “컴퓨터를 잘하게 생겼다” 며 평소에 풀리지 않는 익스플로러 창 크기 문제를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컴퓨터를 잘 하게 생긴 외모를 정의하는 것인지? 의문은 들었지만 ‘아저씨 정답~ 저는 컴퓨터라면 어디가도 빠지지 않지요.’ 그게 티 났나?

몇 시간 후 다시 현상된 사진을 찾으러 방문한 자리에서도 역시 사진관 아저씨는 네이트온 화상채팅 하는 법을 물어보려고 심지어 기다리고 계신 티를 팍팍 내셨다. 사진을 건내주자 마자 내가 휙 돌아서서 나갈까봐. “자 여기사진근데 뭐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띄어쓰기 없음에 주목)

심지어 나에게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오랫동안 한 곳에서 밥을 먹어온 사람은 그 태가 나나보다. 이유는 알 수 없는 뭔가 복합적인 원인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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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22:08 2009/07/1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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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설레임에 대학원 합격자 발표를 조회했던 것이 찰나의 시간 전 인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에 시간은 흘러 오늘 최종 논문 구술 평가 성적에 도장을 받고 제출했다. 행정적인 절차는 모두 마무리되고 이제 논문 제본만을 남겨두고 있다. 두근두근 하면서 마음 졸였던 취직을 위한 노력도 어제 결과를 보고 한결 편한 마음으로 인생의 다음을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인생의 20대는 항상 2년 정도를 주기로 급격한 신분의 변화를 겪었다. 대학 입학 후 신선한 신입생 시절 2년,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한 2년 6개월, 다시 학교로 돌아간 복학생 신분으로서의 2년, 대학원 시절 2년 그리고 앞으로 남아있는 약 2년. 일단 사회에서의 나의 자리는 마련해두었지만 나는 무엇을 더 준비하고 도전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확실하지는 않다.

20대는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나를 성장시키려는 노력을 치열하게 하고, 30대부터는 무엇인가 나의 능력을 발현해 보겠다는 두리뭉실한 희망을 가지고 지난 8년간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 같고, 나의 능력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반대 방향으로 끌거나 멈추게 하거나 하기에는 턱없이 미천한 것으로 느껴진다. 나의 두 발은 어디를 딛고 있어야 하고 양 손은 어디를 향해 뻗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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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2 23:16 2009/07/0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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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Challenge, Challenge Everything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야기가 화제로 나올때마다 내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키울때는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늙고 병들어 죽게되면 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된다고, 그래서 농담처럼 나보다 오래사는 동물을 키울 것 이라고. 이에 대해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사랑과 기쁨을 추구해야지, 먼 미래의 희미한 불안때문에 당장 실천을 못해서야 어찌하냐는 질책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뜨끔했지만, 역시나 소심하게도 이러한 삶의 자세를 꽤나 오랫동안 관철해온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타의도 많이 섞여 있긴 하지만, 그렇게 늘 사랑을 보지 못하고 이별을 보고, 희망을 보지 못하고 좌절을 보고, 멀리 뛰지 못하고 웅크리는 내 모습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행동을 요즘은 조금씩 하고 있다. 오늘은 정말 공을 들인 나의 노력이 드디어 손을 벗어나 평가를 받는 순간이다. 포기할까?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꽤나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밀고나가 결국 끝을 본 나 자신에게 조그만 칭찬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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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6 13:40 2009/05/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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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 졸업

    올해 계속된 GRE와의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점수를 받았기에, 더이상은 덤비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별로 없는 나에게 이번 기회는 얼마나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할 수 있는 기회이자, 또한 멀리있는 목표를 위한 하나의 관문을 통과했다는 느낌이다.

    이래저래 불만도 많고 또 GRE라는 시험이 영어의 native가 아닌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고 확신하지만, 북미권 대학들이 요구하는 기준이 그러하니 만큼 내가 숙이고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향후에는 시험자체와 또 시험점수를 동양에서 오는 학생들에게까지 요구하는 것에 대한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학생들을 위해서나 또 학교를 위해서나 더 도움이 될텐데.

    2년 8개월만에 다시 가본 일본의 느낌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원채 잘 변하지 않고, 또 내가 이번에는 빠르게 적응해서 그럴꺼다. 시험을 홀가분하게 끝내고 하루정도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는게 아쉬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로 위로를 해야겠다. 왕복에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한다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니까, 거리상으로, 시간상으로 또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운 느낌의 나라이다. 아마, 내 인생에서 미국과 더불어 조금 특별한 나라가 될 듯하다.

    이제, 또 다음 목표와 계획을 향해서 출발해야겠다. 하나의 시험을 위해, 이렇게 오랜기간을 쏟아붓는 목표가 다음에도 과연 또 있을까?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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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2 14:01 2009/04/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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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옛 서양 동화속의 전설과도 같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그 유래를 찾아서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 어느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나오는 양치기 같은 이에게까지 닿았는데, 나에게는 그가 아니었어도 그 옆 산에 사는 비슷한 목동이 또 그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희망과 일정 부분의 당위가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는 희망과 밤의 적막한 분위기, 그리고 고인들을 상징하는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이 이 그럴 듯한 전설을 더욱 더 믿기 쉽게 또 믿고 싶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다시 또 생각해보니 이러한 전설 같은 내용이 단순히 허무맹랑한 종교처럼 믿고 안믿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꽤나 그럴듯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참 많다. 세상에는 한번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두번의 기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적과도 같은 생을 한번 가졌던 생명이 자연으로 돌아간 것을 고려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생을 얻은 별들은 탄생에는 이러한 자연으로 돌아간, 한때 생명이었던 것들이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학예회 발표를 준비하는 이제 막 생긴 초등학교 연극부가 있다. 거창한 연극을 준비했지만, 인원도 부족하도 다들 또 연기에는 서툴다. 하지만 새로 생긴 연극부의 활성을 위해서는 또 시시한 레퍼토리를 재탕할 수 없어서 뭔가 거창한 연극을 준비했고, 물론 등장하는 케릭터들도 엄청나게 많다. 무대에 사자로 연기를 마친 꼬마는 뒤로 돌아가 얼른 햇님 복장으로 갈아입고 새롭게 무대에 등장한다. 멀뚱히 나무 분장으로 서있던 꼬마는 무대가 바뀌자 돈키호테 같은 기행을 일삼는 노인으로 변장했다. 생명은 같지만, 무대와 인물에 따라서 탈을 바꾸어 쓰고 무엇인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비슷하지만, 그런 복잡한 것이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거대한 낮은 에너지 평형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핵을 두고 뭉친 고에너지 응축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별것은 아니지만, 그냥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해야 내가 우연히 만나는 어떤 생명이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것이라는 조그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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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2 01:50 2009/01/1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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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낡은 동전 지갑

내가 꼬마였던 시절부터 어머니는 늘 아버지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 칭찬하셨다.  “너희 아버지 젊었을 때 용돈으로 쓰라고 돈 3만원을 지갑에 넣어 주고, 몇 주가 지나서 다 썼겠거니 하고 다시 채워 넣어 주려고 지갑을 열어 보면 그 돈이 그대로 있어. 어떻게 저렇게 돈을 안 쓰고 살까?”

아버지는 그런 돈 씀씀이에 대해서 별로 닮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시면서 절약 정신이 투철한 게 아니라 돈을 잘 쓰는 방법을 몰라서라고 하셨다. 내가 생각해도 아버지는 물건을 돈 주고 사 본적이 극히 드문 사람이었기에,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 뿐이었겠지만 어머니에게는 그 모습이 근검 절약의 표상처럼 여겨 졌나 보다. 따라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고 꼬드겨도 아버지의 지갑을 보기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고 그것은 아들인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말로 어렸을 시절 부터, 아버지는 주말이면 가기 싫어하는 아들들을 데리고 운동이 필요하다면서 관악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셨다. 그리고 가는 길, 버스를 탈 때마다 조그만 가죽으로 된 동전 지갑에서 토큰이나 동전을 꺼내어 나누어 주셨다. 관악산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각종 솜사탕이나 번데기 등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고, 나는 친구들과 동네에서 노는 것을 더 좋아했는데, 억지로 주말을 뺏긴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군침 도는 그런 먹거리들을 내심 아버지가 사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는 그 지갑을 꺼내어 먹을 것을 사주는 일이 없었다. 그 까만 색 동전 지갑은 오직 버스를 탈 때만 볼 수 있는, 아쉬움의 대상인 물건이었다.

얼마 전, 아버지와 마지막 이별을 하는 날, 고인의 모든 물건을 태우는 것이라고 하여 아버지의 모든 물건들은 담아 가져온 가방을 불 길에 뒤집어 털자, 옷가지와 함께 그 까만 색 동전 지갑이 색이 바랜 낡디 낡은 모습으로 푹 불 속으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다. 동시에 내 찰랑이던 마음에도 20년 전, 그 동전 지갑과 함께 시작해 쌓여 왔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대한 무게로 떨어졌다. 추억과 회한, 상심 등이 범벅이 된 그 것 때문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났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아버지가 꺼내 주길 바라던 그 지갑을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왜 20년 동안이나 그 꼬질꼬질하게 낡은 지갑을 안 버리고 계속 쓰신 거야!” 하면서.

추억은 세월의 길이 만큼 높게 곱게 퇴적되어 현실을 지탱해 주는 받침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축들이 꾸준히 퇴적되는 가운데 그 한 축이 더 이상 쌓아 올려 지지 않으니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덜컹 거리는 마음이 그 무엇인가의 부재를 뼈저리게 아프고 후회하게 만든다. 주위 사람들은 그 하나의 쓸모 없는 받침대를 버리고 나머지 것들로만 새롭게 인생을 꾸려 나가라고 충고하지만, 쓸모 없다고 여겨 지는 그 것이 나와 아버지가 세상에서 만든, 또 남은 유일한 공동의 작품이기 때문에 쉽사리 그러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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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1 13:41 2008/12/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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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120cm

어느 사이엔가 ‘국내 최고 시설 수영장’ 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등록한 스포츠 센터에서의 수영 강습도 일년이 다 되어 간다. 뭔가 배우려고 했던 것 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는 운동을 위해서 시작한 수영이 예기치 않은 스포츠 센터의 보수 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 이제야 간신히 접영을 알듯 말듯 하게 되었는데!

학교 스포츠 센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영의 매력은 다른 게 아니라 고작 120cm의 내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깊이의 물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가 있다는 점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물에 발을 담그기까지의 짧은 추위만 참아 내면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공기 속 세상을 떠나 내 전신의 피부가 다른 것과 접촉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전에도 글에서 묘사한 적이 있는데 스쿠터를 타고 지나는 터널 속이나, 혹은 수중이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소리가 들리고 또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손쉽게 즐기는 해외 여행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욱더 급격하게 내 머리 속의 외부에 대한 인식을 스위치 시켜야 되는 격심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우주 유영을 대비해서 물속에서 훈련하는 것을 보면 ‘물 속’이라는 조건이 인간에게 주는 변화는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가 보다. 하긴 물속에 빠져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꽤나 즐기게 된 수영이지만, 애초에 결심했을 당시의 내 상황은 평생 물 속에 눈과 코와 입을 동시에 집어 넣어 본적이 없는 맥주병이었다. 두려움에 떨며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로 두근거렸는데 잠수를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강사 분에게 충격을 받고 정말로 수영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잠수가 익숙해 진 다음에는 그 다음 문제가 첩첩 산중으로 나타나고 하나를 돌파할 때마다 한 달씩 걸리는 그야말로 끈기와 근성의 배움 길이었다. 물론 한 고개 두 고개 시간을 쏟으며 넘어왔기 때문에 지금이 이런 즐거움이 있는 거겠지만.

발로 물을 부드럽게 밀고 당기면서 두 다리 사이로 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 팔을 물속에 넣어 힘차게 당기면 머리부터 시작된 물살의 갈라짐이 양 어깨와 허리를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느낌. 발을 찰 때 마다 등과 배의 물살의 빠르기가 서로 바뀌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 이런 것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내 주위의 흐름이자, 또한 그러기에 더욱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 이러한 것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내가 조금이나마 성장했구나. 어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서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고 그 원인에는 나의 변화와 성장이 있구나. 그 결과는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오래 수영할 수 있는지로 손쉽게 증명되고 혼자 하는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자기 성장의 느낌이다.

아무튼 수영도 이제 당분간 안녕이다. 몸이 기억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일단 접어서 간직하고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을 때 꺼내어 깊이 잠수하면 될 것 같다. 뭐, 당분간은 굳은 의지로 등록한 3개월 체련장 이용권을 썩히지 않도록 열심히 이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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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2 23:33 2008/11/0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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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다

사람에 따라 뭔가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유심히 관찰하려 했다. 얼굴 표정, 자주 쓰는 단어, 이기적인 정도, 식탐, 습관, 돈 씀씀이 그리고 다른 것 보다 더 중요한 마음. 속에 없는 말도 하고 가끔은 나를 쿡쿡 찌르는 말을 들어도 헤헤 웃으면서 대화하려 했고 무엇인가 주고 또 무엇인가 받았다. 이러한 꽤나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학습 과정을 통해서 느낀 점은 “사람은 다 같다” 는 것이다. 좋다. 많이 봐줘서 다 비슷하다.

사람은 같지만, 그의 위치가 행동을 결정한다. 그래서 다들 다른 행동을 하고 다들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모두 이기적이지만 부자는 아무것도 안 바꾸기를 원하고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바꾸기를 원한다. 결국 근본적인 몇 가지 원칙에 의해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 만만하고 단순한 존재가 사람처럼 보인다. 너와 나의 눈높이가 같다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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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23:59 2008/10/1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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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unning

컴퓨터로 각종 문제를 풀어내는 알고리즘이라는 분야를 살펴보면 Prunning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가지치기'라는 의미지만, 실제 이 분야에서 쓰이는 의미는 싹수가 노란 놈은 먼저 잘라낸다는 뜻이다. 실제로 문제를 풀때 이런 답이 좋을까? 저런 답이 좋을까? 가능한 답 모두를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게 정답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 답들은 미리 제거를 하고 나머지들만 가지고 이것 저것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 절약을 위해서 쓰는 방법. 100개 중에 하나 고르는 문제라면 뭐 하나하나 정답일지 따져 볼 수 있겠지만 100이 100번 곱해진 수만큼 가능한 답이 있으면 어느게 정답인지 찾는 문제는 아무리 컴퓨터라도 우주가 끝날때까지 못푼다에 돈을 걸어야 한다. 컴퓨터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것이 이런 커다란 문제들이다.

스쿠터가 펑크난 이야기를 해야겠다. 보통 때보다 무거워서 그런지, 맨홀을 밟아서 그런지, 바람이 원래 없어서인지. 잘 타고가다가 갑자기 흔들흔들 하면서 뒤가 푹 꺼져버렸다. 처음 겪는 상황이라 바퀴에 뭐가 붙었나 했는데 황급히 세우고 바퀴를 보니 마음 아프게 기운없이 쪼그라든 모습. 이를 어쩌나. 집에까지 끌고가는것도 큰일이지만 내일도 타야되는 스쿠터가 망가진 것이 문제요, 집 근처에 적당한 수리 센터를 알지 못하는 것도 곤혹스럽고, 게다가 단골 수리센터는 스쿠터를 밀고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저번에 고생고생해서 끌고 넘었던 기억이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사건으로 남아있고 게다가 이번에는 바람마져 빠진 뒷바퀴라 더욱더 무겁게 느껴질텐데. 어찌해야될까. 컴퓨터가 다루는 문제 만큼은 아니지만 내 머리가 다루기에는 꽤나, 정말로 꽤나 큰 문제다.

내 스스로 고칠지 수리 센터에 맡겨야 할지, 스스로 고친다면 어떻게 고쳐야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떤 방법으로 알아야 할지, 수리 센터에서 고친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단골집에 가면 뭐가 좋을까?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가면 뭐가 좋을까? 가격은 각각 얼마나 들고 어떤 방법이 가장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왠지 머리가 복잡해지게 만드는 문제를 마주칠때면 내가 늘 하는 것처럼 나는 하나하나 가능한 답들을 찾아가고 우위를 비교했고, 내심 속으로는 이러한 과정을 즐기고 또 시간을 오래 소비했다. 아, 내가 고치는게 더 좋을 것 같고, 장비는 어떤 것을 사야하고, 언제 고치면 그 동안 스쿠터를 못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겠다. 적당히 곱하기와 더하기를 이용해서 괜찮을 것 같은 해결책을 하나 골랐고,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물론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기운을 빼기는 했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러한 문제가 계산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변수를 항상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결국 주말에 예상치 못한 약속으로 스쿠터를 써야 할 일이 생겼고 금요일에 주문해 놓은 수리 공구가 도착하기 전에 근처 센터에 가서 고쳐야 했으며, 무려 바가지를 썼으나 울며 겨자먹기로 고쳐야했고, 도착한 수리 공구는 별 쓸모가 없어진채로 그냥 택배 상자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괜히 머리를 너무 많이 굴렸고, 또 쓸모 없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이럴 것이면 그냥 금요일 아침, 집 앞에 있는 센터에 끌고 가서 적당한 돈을 주고 고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이건 가장 단순하게 생각해서 나올 수 있는 답이다. 아니 생각을 별로 하지 않고도 나올 수 있는 답이겠다.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게 문제다.

조금 더 빨리 결정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답들을 Prunning을 통해 빠르게 솎아내야 한다. 그리고 Prunning 한 결과로 나온 답은 별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없을 만큼 단순한 것이 되어야 한다. 판단에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하고 이러한 결정은 실제 앞으로 벌어질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 너무 오랜기간 동안 답을 추적하고 계획을 세우면 결국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결정은 늦어지며 현실과는 더욱 더 동떨어진 것을 훌륭한 솔루션 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를 미소지으며 뽑아들고 베게 밑에 깔고 흐뭇하게 잠이 들게 되겠지만 내일 일어났을 때의 상황은 여전히 더 안좋아지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어제의 내가 계산했던 그것이 아니다.

옳은 결정을 한다는 것, 올바른 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인간에게나 컴퓨터에게나 참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어렵고, 컴퓨터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그러므로 어설프게 분석적인 방법을 따라하기 보다는 확실한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특히, 지식의 유효기간이 더욱 더 짧아지고, 오늘과 내일이 매번 달라지는 요즘은 더 그런것 같다. 근심없는 일상이 계속되기를 원한다면 오늘과 내일만 계산하자. 모래는 우리의 능력 밖이고 도박이다. 

Posted by Hwijung

2008/09/30 00:04 2008/09/3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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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조그만 다이어리에 일주일 마다 있는 미팅의 내용을 기록할때마다 '아 뒷장들이 얼마 안남았네'라고 느끼고 올해의 반환점을 돌았음을 실감하고 있다. 또 잠이 덜 깬 아침에 스쿠터를 타고 학교를 오를 때마다 어제와는 다른 쌀쌀함에 사뭇 잠이 깨고는 산이 불러온 빠른 가을을 실감하고 있다. 또 조금 시간이 지나면 온통 단풍잎 휘장으로 갈아입겠지. 작년에 이 장소에 집중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순식간에 변화하는 LED 불빛같은 그 모습을 미처 못보았는데, 올해에는 조금 더 바닥을 보고 앞을 보고 눈을 깜빡이지 말아야지.

늘 두려움을 느낄 때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불현듯 인식하게 될 경우이다. '아 이 정도 노력으로 충분하겠지'했던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복잡한 것이어서 좌절을 맛볼 때의 경험이라던가. 오래전에 묵혀놨던 미해결의 무엇인가를 꺼내어 자신을 다시 테스트 해보는 일에서 전혀 변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라던가. 육체의 불변함을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무엇인가 정신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오래가면 두려움을 느끼고 변명거리를 찾게 된다.

초조한 마음에도 가는 시간을 붙잡아 둘수는 없고 늘 언젠가는 평가받아야 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때의 구구단과 같은 간단한 숫자 들에서 20년의 세월을 거쳐서 어느덧 더 커다란, 어린 시절의 9와 같은 엄청나게 커다란 수가 몇 번이나 곱해진 것 과 같은 크기로 나를 압도하는 어떤 시험이랄까 시련이랄까. 나는 고작 조그만 꼬마에서 고만고만한 키로 자랐지만, 내 앞에는 한시간에서 하룻밤이 되고 책 한권이 되고 한달이 되고 부풀어오른 사전이 되었다.

박태환 선수의 1600M 자유형 경기에서 발견한 것처럼, 모두가 같이 시작하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누군가는 200M에서 지치고 누군가는 400M에서 지치고 누군가는 믿을 수 없게 지치지 않는다. 0.1초에 숨을 참으며 물속으로 뛰어들던 선수들이, 옆 레인을 보며 팔을 더 멀리 뻗고, 발을 더 깊게 차서 앞서 나가려고 애쓰던 선수들이 결국은 양 옆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물 속에서 혼자 터질 것 같은 폐를 억누르면서 그렇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나는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미리 해야되고 많이 해야되고 오래해야 되고 또 여분을 준비해야된다. 또 빠르게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해 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꾸준히 자신에게 타일러 왔다. 때로는 오랜 기간을 변하지 않는 자신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옳은 쪽으로 변화해왔다는 자긍심은 가질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이 블로그에 아주 오래된 글을 볼때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만큼 변했고 그만큼 성장했다고 느낀다.

20대의 가을에 있다. 겨울을 준비하려면 역시 땔감을 많이 모으고 먹을 것을 저장해 놔야한다. 하나 다행인 것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앞 사람의 등과 뒷 사람의 코 뿐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서도 따뜻한 햇살을 비춰주는 20대의 한여름이 고맙게도 곁에 있다는 것이다.

Posted by Hwijung

2008/09/05 22:14 2008/09/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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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 정도의 보편성과 또 역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

사람을 연구하는 일이란 참 어렵고 종잡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비록 나는 지금까지 주로 컴퓨터를 대하는 일과 공부를 해와서 딱히 사람을 대하면서 놀라울 정도의 당황스러운 경험을 해본 적은 많지 않지만 다른 몇몇의 경우에서 조심스러운 유추를 통해 위와 같은 생각을 얻고 내가 그러한 공부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한다.

사람을 연구하는 일이라는 것도 여러가지 분야가 있겠지만, 역시 물건을 파는 상인에게도 그렇고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위해 노력하는 청춘남녀들에게도 그렇고 사람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 예측에 어떠한 논리성이나 결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함수처럼 입력을 넣으면 늘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또 늘 입력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주 근거가 희박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 예를 들면 '누구나 자신에게 경제적인 이득이 오는 것을 좋아한다.' 라던가 '성욕은 남성이 여성보다 강하다.' 등등에 의존해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에 의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언제나 Case by Case 이다. 인간 행동 예측에는 놀라울 정도의 보편성과 역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이 공존하는데, 이러한 것에 대하여 보통은 자신의 경험에 기초한 거의 미신에 가까운 예측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손님을 그냥 보내고, 사랑에 실패하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러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의외성에 당황하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하고 간혹 흥미진진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당사자가 되면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의외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행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면에서는 각자 통일되는 면이 없이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믿음을 깨버리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의 저 깊은 어딘가에는 다들 공유하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봐도 쉽지 않은 일이고, 또 인간으로서 다른 표정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서로 투영되는 하나의 상을 찾기도 하고, 또 이런일들이 반복되고. 혼란은 더해져가고.

도대체 알 수 없는 인간들의 변덕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자 저명한 학자들은 뇌를 연구하기도 하고 통계를 연구하기도 하고 가정만 잔뜩 늘어놓는 도저히 비현실적인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이래저래 노력중이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고 많은 연구비만을 날린채 노벨상 몇개만 늘어놓은 듯 하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그런게 가능해?'라고 묻고 싶지만 그들은 또 5년내에, 10년 안으로는 꼭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나도 공부하는 입장이라서 그런 말들이 어떤의미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이러한 불예측성(?)이 인간사의 드라마를 만드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노력의 목표에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러한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이 펼쳐지는, 그래서 자극받는 세상이 꽤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뭐, 가끔은 너무 어려워서 불평하기도 하지만.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지만, 인간들은 늘 주사위를 던지면서 살아간다.

Posted by Hwijung

2008/08/02 00:04 2008/08/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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