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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적당한 드라마와 유머를 섞고, 다들 가슴이 뭉클해지는 애국 코드를 가미한 다음에 보기 좋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하면 괜찮은 영화가 나올 것이다” 라고는 어느 신출내기 경험 없는 영화기획자도, 심지어 나 같은 영화 산업에 전혀 이바지 하지 않는 사람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가 “나오겠다.”“나왔다.” 는 사전적과 사후적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무엇을 해보기 전에 성공을 예측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이 결국 흥행 성공과 참패를 결정한다.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는 주위 사람들을 다 뿌리치고 나의 길을 가야하는 때가 있고, 그 기회를 운좋게 잡은 감독은 등장 인물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누렸다.

Posted by Hwijung

2009/09/17 16:45 2009/09/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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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 플레이어

고가의 물건을 살때면 늘 생각해 보는 것이 “이 물건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런 물음을 머리속에 한 2주정도 넣고 다니다 보면 순간적인 충동으로 원했던 물건들은 어느 사이에 별로 필요없는 물건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쓸데없는 돈을 쓰지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일생동안 이런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구입한 고가의 물건도 물론 있긴 한데, 대표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컴퓨터를 멀리하는 금욕 생활중이기에 영어공부를 위한 MP3 파일을 무엇으로 플레이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MP3 플레이어를 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늘상 하는 것처럼 “지금 MP3 플레이어가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물음과 함께 일주일 정도를 지낸 것이다.

비교적 저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또 많이 가격이 내렸기도 하고, 또 당장 몇 주 안에 필요해질 것 같기도 해서. 서둘러, “아 이건 꼭 필요하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후 조금은 색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는 도대체 얼마나 MP3를 플레이 가능한 디바이스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한번 떠올려 보았다.

1. 학부시절 구입한 PANASONIC CDP

2. 늘 가지고 다니는 오래된 EVER 핸드폰

3. 역시 몇 년 전에 구입한 SONY VAIO 노트북

4. 얼마전에 생긴 TOSHIBA 노트북

5. 요즘 유용하게 사용중인 딕플 전자사전

6. XBOX 360도 아닌 오리지널

7. 학부 입학하면서 구입한 옛날 AMD 데스크탑 컴퓨터

8. 아반떼 HD 카오디오

9. 노래방 기기 겸 MP3CD 플레이어

10. SKY에서 출시한 KTF용 휴대폰 공기계

11. 학교에서 사용 중인 비교적 최신형 데스크탑

아마 틀림없이 빠뜨린 몇 개를 제외하고도 무려 11개나 되는 MP3 플레이 가능 기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들로 한정시켰기에 마련이지 범위를 “우리집”이나 “내 생활반경”으로 확장시키면 그 수는 아마 기하급수적으로 퐁퐁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기계들에는 전용 목적으로 만들어 졌든, 혹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삽입되었던 간에 MP3를 플레이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개발자의 노력에 의해서 탑제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노력과 자원이 나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고 나는 또 하나 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많은 잠자는 기능들이 주위에 있다면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나는 언제나 MP3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데스크탑을 사용하면 되고, 걸어다닐때는 휴대폰을, 운전 중일때는 카오디오를 사용하면 된다.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할때는 각각의 노트북에서 Winamp라도 켜면 되고, 도서관에서 공부할때는 마침 사용중인 전자사전에서 플레이하면 된다. 언제나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이미 놓여있으므로 내가 구입하는 MP3 플레이어가 순전히 “MP3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면 구입하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결국 그러면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더 생각해본 결과, 간단하게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는 Mobility를 구입하는 것이고, 조금 더 이쪽 영역의 말을 쓴다면 Seamlessness가 아닐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악들을 플레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가 듣던 그 음악과 내가 보던 그 인터페이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Resume 기능도 지원된다면 금상첨화다. 언제나 내 귀에 음악을 매달고 다니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때 정지 시키고 다시 내가 원하는 그 때 다시 플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인이 존재하는 3차원 상의 X,Y,Z 좌표가 점점 더 무의미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예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10년~20년 전에 등장한 MP3 플레이라는 기능이 이제 이렇게 Seamlessly 지원되는 것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근미래의 Internet 접속 이후에는 어떤 기능들이 뒤를 이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점 더 늘어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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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0 01:09 2009/02/20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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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

여성주의 영화를 표방했지만 너무 드라마가 강한 나머지 뭔가 있어야 될 딱딱한 부분까지 녹아 버린 듯한 영화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보는 것은 즐겁고, 또 그게 우리나라가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이면 더욱더 신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요즘 TV를 틀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세기의 스캔들까지는 안되고 One decade 스캔들 정도 될 듯. 너무 악평으로 시작하나? 하지만 자주 나오니 만큼 그 즐거움은 보증 된 것. 스릴은 없지만 적당히 곡선을 그리며 요동치는 플롯은 엔딩 크레딧을 벌써? 라고 느낄 만큼 재미있기는 했다. 탄탄한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무리하지도 않고 의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휘트브래드상 수상작이라는데 이 상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 지금까지 읽은 수상작들이 다 내 마음에 들었으므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도 해 놓고. 결론적으로 7천원 감은 아니지만 천원 감은 충분히 하는 영화! 아, 키이라 나이틀리의 허리를 꽉 조이는 옷을 입은 모습을 캐리비안의 해적에 이어 보고 싶다면 역시 더욱더 봐 줘야 하는 영화. (내 영화평은 왜 이리 내용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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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3 00:00 2008/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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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 | 悲夢

장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생각하되, 호접지몽 이라는 지극히 애매하지만 고상한 비유로 이를 표현했다. 비몽이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단순한 장소와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항상 대칭 구도로 배치되어서 과거와 현재, 남자와 여자, 꿈과 현실로 나뉘어 지고 이의 경계는 처음에는 분명해 보인다. 블라인드 뒤의 여자와 앞의 남자처럼 카메라의 영상도 분명이 이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연스러움에 저항하지만 (무려 머리를 자해하면서;) 결국은 과거가 현재와 포개 지고, 남자와 여자가 포개어 지고,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되고 죽음과 삶은 하나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나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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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9 23:17 2008/10/0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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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그리고 유희열

부드러운 음악에 대한 욕구가 조금씩 커져가고, 인생의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가사에 공감하는 법도 배우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서 예전에는 잘 안들었던 한국의 발라드 싱어송라이터들의 곡을 근래에는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가정학, 교육학 이런 곳에 가서 빌릴 책을 고르는 것처럼 어느 표제에 손이 가야할지 갈팡질팡했지만, 이윽고 소위 이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인정받고 있는 뮤지션이 누구인지 등을 귀동냥으로 얻어 듣고 난 다음에야 제목에서 언급한 뮤지션들이 유명하고 그들의 음악에도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저것 찾아 듣기를 몇 개월이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몇 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정도 음악을 배우는 단계에서 즐기는 단계로 넘어가고 보니 김동률, 그리고 유희열의 음악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선율이 아니라 그들의 가사이다.

남성 뮤지션들이 쓴 가사라 그런지 많은 부분 공감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음악을 듣는 또다른 매력의 하나인데, 결과적으로 말을 하고 넘어가면 김동률의 가사가 훨씬 소화가 잘 되는 편이다. 유희열의 가사를 듣다보면 마치 어울리지도 않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억지로 서버가 권해주는 오늘의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김동률은 남성팬을 위해서 가사를 쓴다면 유희열은 여성팬을 위해서 가사를 쓴다라는 느낌이다. 나같은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남자들이 몇 번의 사랑을 실패하고 몇 번의 사랑에 두근거리고 몇 번의 사랑을 후회하는 그러한 일상 속의 조금은 중요한 이벤트들을 솔직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가사를 붙이는 김동률에 비해서, 유희열은 여성들이 바라는 절반의 현실과 나머지의 절반의 상상과 나머지의 공상으로 만들어낸 남성이 어떻게 반응해야 그들의 연애를 더 이상적(물론 여성의 입장에서)으로 만드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속의 남성이 하는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낸다.

그래서 김동률의 가사를 올린 피자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유희열이 만든 것은 영 거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저런 남자가 어디있어? 착한척 하기는." 그리고 설마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로멘틱한 상상을 하는 여성들이 있을까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말이다. 예술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훨씬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위한 환호성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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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1 10:50 2008/04/2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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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할때 듣는 클래식 음악 선

  다른 것으로 명망을 얻은 유명한 사람들은 자기가 선정한 클래식 음악들을 묶어서 음반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던데, 그걸 보고서는 혹시나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곡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두근두근 트랙을 살펴보는 일이 있다. 하지만 이건 뭐. 중/고등학교 음악시간 교과서 음악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상업성을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넣어야 한다지만, 네이버"듣기 좋은 클래식" 만 검색해도 훨씬 더 전문적인 리스트가 나오는 마당에 이런 걸로 돈벌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듣는 음악들 중에 골라서 끄적끄적 적어본다. 또 음악의 바다를 헤엄치다 부표를 하나 띄워놓는 그런 의미도 있다.

Ravel :  Piano concerto in G major, 2nd. Adagio assai



이렇게 정갈한 곡이 있을까? 현란하지 않은, 철저히 뒤에 숨겨져 있는 오케스트라와 단조로운 반복의 피아노 선율은 아주 단순한 모노톤의 구조지만 대단한 중독성으로 다가온다. 마치 어두운 무대 뒤에 감춰진 오케스트라와 홀로 춤추는 발레리나 같은 느낌의 곡. 최근에 읽은 '롤리타'라는 소설이 자꾸 떠오른다.

Ravel :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Op.19



라벨 음악중에 자주 듣는 것 하나. 참 이 아저씨 음악은 단순명료해서 좋다. 화려하지도 않고 수식이 많이 붙지도 않은 정갈하고 순수함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이름도 이렇게 잘 짓는지. 진짜 로멘티스트 였을 듯.

Saint-Saens : Symphony No.3 In C.Minor "Organ"



고르다보니, 요즘은 프랑스 음악에 빠져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네. 드뷔시 "거울"도 요즘 한참 좋게 듣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생상은 간단한 소품 몇개만 듣고 나에게는 잊혀진 작곡가였는데, 교향곡을 들어보니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Richard wagner : Tristan und Isolde "Isoldes Liebestod"



이렇게 잔인하게도 탐미적인 사랑의 음악이 또 있을지 싶다. 밤에 가만히 귀기울여 듣다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 연주로 골드 시리즈 음반에서 뽑아냈는데 음질도 좋고 도대체 흠 잡을데가 한군데도 없다. 경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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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8 10:45 2008/03/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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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b 단조 미사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 토마스 합장단

Classical Music을 즐겨듣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중에서도 어떤 음악을 들으세요?" 물어보면 "모짜르트 이후부터 라흐마니노프 이전까지요." 라고 말을 한다. 사실 뭐 대부분이 커버되는 범위지만, 중고등학교때 배운 서양 고전음악의 시대 중 빠져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바로크 음악이다. 바흐, 하이든, 헨델로 대표되는 이들 시대의 음악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울타리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집에 있는 음반에도 거의 손이 안간채 방치되기를 몇년. 그런데 오늘 아무래도 그 편견을 깨버려야겠다.

자주가는 예술의 전당에서의 클래식 콘서트이지만, 이번 만큼의 중량감을 느끼는 콘서트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가는 콘서트들이 다 무료로 티켓을 구한 공연들이기에 -_-; 이러한 소위 티켓 파워가 있는 공연들은 초대권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차저차 어렵게 구한 티켓이니만큼, 충분히 즐기고 오기위해서 사전 예습이 필수!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귀에 충분히 숙달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공연자체에 대해서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나름 후기를 써야겠다고 작심한 만큼 좋은 점과 나쁜점 몇 가지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따뜻한 악기소리 - 어찌 이렇게 고급스럽고 경건한 악기소리가 날 수 있을까? 고가의 악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 세계 일류 수준의 연주자들이라 미세한 실수도 찾기 힘들었다.

2. 관람태도 - 주최측에서도 악장간 박수를 엄금하고, 또 음악이 끝난후 바로 터지는 박수에 대해서 주의를 충분히 주었는지, 나쁜 타이밍에 터지는 박수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관람태도도 매우 좋았다. 초대권을 많이 뿌리지는 않은 모양이고, 관람 연령층이 꽤나 높아서 정숙한 공연 분위기가 좋았다.

1. 끝으로 갈수록 지치는 합창단 - 소년 합창단이니만큼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끝까지 집중력을 유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목소리의 힘이 떨어지고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지휘자도 끝에는 거의 합창단만 지휘하는 모습.

2. 조금 더 친절한 자막 - 물론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금 더 자세한 자막을 위에 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프로그램 북을 보면서 가사를 찾기도 힘들었다. (이내 포기했다)

어러가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정말 인상적인 공연인 것은 틀림없었다. 바로크 음악을 듣게 된 계기가 될 것도 의미있지만, 합창단이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새삼스래 재발견하게 되었고 말이다. 합창이라고는 매번 베토벤 9번만 듣다가, 이러한 목소리가 차곡차곡 겹쳐서 쌓이는 아름다움은 거의 처음 느껴본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생활은 언제나 재충전의 계기가 된다. 또 열심히 다음 공연 사냥을 위해 떠나야지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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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1 22:31 2008/03/0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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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Requiem], 아름다운 울림

나는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잠에 빠진다. 그래서 늘 습관처럼 자기 전에는 CD가 정리되어 있는 조그만 책장에서 어느 음반을 들을지 고르고 CD 플레이어에 걸어 놓은채 1시간~2시간 정도 플레이가 되도록 셋팅한 후에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는다. 아무래도 모두가 잠든 시간이라 가족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한 음악들을 틀어놓는 편이다. 최근 자주 듣던 Gustav Mahler의 교향곡 9번 중 4악장이나 다른 교향곡들의 아다지오 악장들, 혹은 Meditation이라는 글자가 크게 써있는  EMI에서 발매된 소품 음반 같은 것들이 지겨워지자 다른 음악을 찾아보고자 인터넷 탐험에 나섰다.

레퀴엠은 그러한 목적에 딱 맞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은자를 위한 미사 음악"이 원래 뜻이지만, 사실 원래 목적으로는 쓰여질 수 없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죽은 사람은 음악을 들을 수가 없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죽은 이를 위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불러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못듣는 다는 건 죽은이에게나 살아남은 사람에게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어설픈 대리만족이지만 자기 전에 누워서 들으면 그나마 목적에 50%는 부합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요즘은 열심히 음반을 꺼내어 든다. 내일 아침에 또 부활하긴 하겠지만 어쨋든 잠시나마 죽은 거니까.

서양 고전음악에서 레퀴엠으로 유명한 것은 몇 개를 꼽을 수 있는데 모짜르트(Wolfgang Mozart)의 것이 하나, 그리고 포레(Gabriel Faure)의 것이 또 하나, 브람스(Brahms)의 독일 레퀴엠, 마지막으로 베르디(Giuseppe Verdi)의 것이 하나. 모짜르트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포레는 프랑스 사람, 브람스는 독일 사람, 그리고 베르디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각각의 악곡에 그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브람스와 베르디의 레퀴엠은 거의 듣지 않으니 모짜르트의 것과 포레의 것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한다.

모짜르트의 레퀴엠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작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모짜르트가 완성시키지는 못하고 그의 제자였던 쥐스마이어 Lacrimosa의 후반부 이후를 스승이 남긴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했다고 하여 사실 진정한 모짜르트의 악곡은 아니지만, 늘 활기차고 밝은 음악으로 기억되는 모짜르트의 다른 곡들과는 달리 경건함과 엄숙함이 잘 녹아 있다. 마치 그의 40번 교향곡 같은 느낌이다. 자신이 작곡한 곡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던 묘한 곡이기도 하다.

가장 인기가 있는 부분 Lacrimosa(눈물의 날)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의미 심장한 주제 동기로 적절히 사용된 부분. Celibidache가 지휘하는 Muchner Philharmoniker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자도 아니다. 서양 사회의 기반을 흐르는 기독교를 통한 믿음이 이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음악, 또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유럽 여행을 그렇게나 갈구하게 만드는 수많은 문화적인 유산으로 표현되어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으니 그 업적 만큼은 칭송 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짜르트의 레퀴엠도 꽤 듣는 편이지만, 그 보다는 개인적으로 포레의 레퀴엠을 훨씬 더 선호한다. 심포닉한 화음을 만들어내는데는 모짜르트의 재능이 아주 뛰어난데, 단선율의 어떤 멜로디를 가지고 엮어 내는 기술은 포레를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칠리안느(?) 같은 곡을 들어보면 특히 현악을 잘 사용하는데 이러한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모습이 레퀴엠에는 아주 잘 어울린다고 본다. 모짜르트 만큼의 경건함은 좀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뭐 듣기에 좋은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 묵직한 현의 울림이 매력이다.

드디어 나왔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 포레의 레퀴엠중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다.  역시 비교하기 좋게 역시 Celibidache가 지휘하는 Muchner Philharmoniker다.


레퀴엠은 Celibidache의 음반을 즐겨 듣는데 다소 느리게 설정한 템포와 오직 라이브만을 고집스럽게 추구한 결과로 음반에서 나타나는 현장감. 특히 연주가 모두 끝나고 나서 여운을 즐기면서 천천히 여기저기서 조용하게 터져나오는 박수는 매력적인 감상포인트다. 

녹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오케스트라의 실연을 가서 들어보는 것 만은 당연히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악기의 소리보다 음반으로 들었을 때 더 손해를 보는 것은 바로 성악이다. 아무리 녹음 기술이 발달하고 재생 매체가 좋아진다고 해도 실제로 콘서트홀에서 듣는 합창단의 거대한 에너지를 재현해 내기란 불가능할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합창을 실제로 들을 기회만 노리고 있지만, 아직 포레의 레퀴엠은 국내에서 연주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오르간이 없어서 그런가.

우리나라도 고전음악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서 조금 마이너한 악곡들도 연주되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있지만(사실 포레의 레퀴엠 정도면 마이너 한 것도 아니다)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운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타면 일부러 모르는 척 요즘 듣는 고전 음악을 틀어놓는데 대부분은 끄고 라디오를 듣거나, 조금 더 신나는 음악이 없냐고 물어보곤 한다. 아마 누군가 "이 음악 좋은데 무슨 곡이에요?" 라고 물어본다면 신나서 설명해주고는 매일 같이 드라이브하자고 졸라댈지도 모르겠다 - _-

Posted by Hwijung

2008/01/07 14:47 2008/01/0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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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신을 몇퍼센트나 믿습니까? - 파이 이야기

경고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은 분은 일단 책을 읽은 후에 계속 이 글을 읽기를 강력히 권장합니다.

Draft 입니다. 추후 토론을 통해 일깨워진 부분을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사례 1. 생물학을 전공하는 친구 이야기.

이 친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중/고등학교때 흔히 그런것 처럼 청춘 남녀의 만남의 장으로 교회를 다닌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정말로 신실하게 다녔으며, 어느날 갑자기 신학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다고 말해도 당연한 듯 받아들일, 그런 친구 였다. 고등학교 이후로 이 친구의 소식을 한참이나 못듣고 지내다가 대학와서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이 친구는 쌩뚱 맞게도 생물학을 전공하고 의사가 되려고 하고 있었고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신앙을 버렸다고 고백한 일이었다.

"생물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신을 믿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 생물도 아닌 근원의 물질 단계부터 세포 하나를 거치고 다세포 생물을 거쳐 점점 복잡해지며 결국 인간에 이를때까지 진화는 그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고 그 어디에도 신이 개입될 우연성이 없거든. 1+1=2라는 과정에서 신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21312512+9847123=31159644 에서도 복잡해보이지만 아주 논리적인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복잡해보이지만, 그 근원은 1+1이나 마찬가지거든."

사례 2. 컴퓨터 공학과의 어느 교수님 이야기.

우리 과에는 호주 출신의 교수님이 계신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이 교수님도 모태 신앙이었으며 기독교를 믿고 계셨다. 하지만, 공대 쪽의 학문이 그렇듯 세상의 모든 원리를 수학이라는 언어로 논리적으로 풀어 내야 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런 방식으로 이해하는 세상의 부분은 점점 넓어져서 신의 영역이라고 부를 미지의 공간은 점점 좁아져 갔다. 이를 양쪽 모두 추구하기 어려웠던 교수님께서는 결국 신앙을 버리고 말았다. 세상의 원리에 미지한 우리들도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 따위에서 신을 느낄 수 없듯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진리를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세상에서 신을 느끼는 것은 힘들어져 간다.

 

 신을 내면화 하라. 파이, 칸트를 뒤집다.

 이 책의 1부는 파이의 성장 과정이다. 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전해오는 것도 이 부분이다. 

파이는 무신론자와 독실한 힌두교 신자인 스승을 모두 두고 있다. 이 두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은 파이의 입장에서는 상충되지 않는다. 그들 모두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신앙은 신을 내안에 품는 것이지, 품는 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반면, 그의 가족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돈이고 명예다. 호랑이는 무서워서 접근하면 안되는 동물이라는 것을 파이에게 일찌기 가르치려한다. 위험과 불안은 제거하려고 노력하거나 외면한다. 결국 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파이는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 소년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않는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파이는 신을 종교를 통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겉치례는 중요하지 않다. 파이는 신을 사랑한다. 여기서의 사랑은 호랑이에 대해서 7번째 방법, 같이 살아가기를 선택하게 만든 그 사랑이다. 

신을 왜 믿는가? 구원을 얻으려고 믿는다. 구원은 무엇인가?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안정이다. 무신론자보다 더 나쁜것은 불가지론자라고 한다. 무신론자의 "신이 없다"는  주장은 무신론자에게 확신을 준다. 완결된 상태다. 불가지론자의 지식의 영역과 신의 영역을 분리하고 미지의 세계를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길들이지 않은 호랑이와 같다. 언제 불안이 피어올라 모두를 집어 삼킬지 모른다. 

파이가 뛰어노는 동물원은 세상의 또다른 축소판이며, 이는 2부에서의 호랑이, 파이, 하늘, 구명보트, 신 하나  등이 속한 바다 위, 그리고 작은 도시에 비유되는 내려다보는 바다 밑으로 무한히 복제된다. 결국 독자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2부는 신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이다. 독자가 신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 이다. 소년은 믿음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 믿음은 하늘을 향한 것도 아니고, 망망한 바다를 향한 것도 아니다. 믿음은 생명에 대한 믿음이고 믿음을 통한 행동이 불안한 평행 상태를 유지한채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반영이다.

구명보트는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나타낸다. 믿음을 갈구한 소년과 본능에 충실하고 의심하는 호랑이는 불안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 동거를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은 소년의 태도이다. 소년은 호랑이에게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 소년은 호랑이를 마음으로 품고 내쳐서는 안된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믿음으로 이끌어 나가야한다.

섬에 도착한 호랑이와 파이는 서로 다른 삶을 시작한다. 호랑이는 사냥을 하고 파이는 먹을 것을 찾는다. 평행상태에서 다시 불안한 상태로 바뀌었으며 소년의 호랑이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다시 힘겨운 길들이기가 시작된다. 이러한 상태는 낙원이 아니고 추구해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국 그 증거를 눈으로 확인하고 불안을 느낀 파이는 다시 떠나기로 결심한다.

 3부는 구조된 소년과의 인터뷰이다.

2부에서 호랑이는 안정을 위협하는 의심과 불안이고 소년은 이를 억누르는 내면의 심리로 봤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에 뒤통수를 맞은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2가지 이야기의 비유다. 하이에나는 요리사에 비유되고, 오랑우탄은 어머니, 얼룩말은 선원에 비유된다. 그러면 파이는? 놀랍게도 리차드 파커. 호랑이 그 자체다. 내면 심리를 2가지로 나누어 그려내던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야 꽝! 호랑이와 파이를 동일한 개체로 바꿔버린다.

멕시코에 상륙한 이후, 리차드 파커는 작별도 없이 떠나버린다.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버린 호랑이에게 파이는 서운함을 느낀다. 내면을 지탱하는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끊임 없이 대립하던 불안의 축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호랑이 자신이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그 떨어져나간 부분을 매운다. 호랑이는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내가 호랑이 자신이었다는 사실, 나의 내면에는 여전히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납득해야 새로운 믿음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두가지 이야기가 독자를 혼란시킨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와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 하지만 앞에서 누누히 작가가 그려냈듯이 어떤 이야기가 실제 있었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놀이 공원에 가서 색이 다른 셀로판지를 양쪽 눈에 대고 보면 입체처럼 튀어나와 보이는 영상을 보고 놀라워하다가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아닌 평면의 영상이듯, 어떤 종교적인 믿음에 의해서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던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머리속에 각인되는 것 그 자체이다.

 파이

파이는 3.1415926535.. 로 시작하는 무한의 숫자이다. 또한 원의 지름에 파이를 곱하면 원의 둘래를 얻을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런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지만 무한을 상징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무한은 곧 신을 의미한다. 내제되어있는 무한의 속성을 의미하며 이는 신을 품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소설 중간에 우리가 어디에 있던지 원의 중심에 위치하고 주위가 빙글빙글 돌아갈 뿐이라는 말은 이 파이라는 이름으로 더 명확해진다. 어디를 향하는 시선이던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은 지름이지만, 결국 우리는 둘레라는 세계 전체를 파악한 것이나 진배없다.

Posted by Hwijung

2007/12/24 18:58 2007/12/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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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음악이 즐거운 이유

 어느 중학교 시절의 과학 수업시간이었다. 늘 낮은 평행선을 달리는 톤의 목소리로 수업을 하시던 작은 키의 남자 선생님은 칠판과 마주보고 수업을 하고 계셨다. 별로 유머가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히 놀림이 되는 외모나 특징이 없던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의 집중 대상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늘 다른 과목의 공부를 하거나, 자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언젠가, 소란스럽게 잡담을 하던 아이가 걸려서 크게 체벌을 당한 이후로, 선생님의 작은 몸에서 깜짝 놀랄만한 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을 모두들 알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아주 조용한 상태로 시계의 초침소리가 크게 들리게 되었다.

 선생님 당신도 이러한 적막하고 무미 건조한, 하품나는 분위기에서의 수업을 본인의 단점으로 여기고 극복해보려는 노력이 보이는 행동을 티나게 하실 때가 있었다. 젊은 선생님 이셨으므로 주위의 유행이 되는 이야기라던가, 인기있는 TV 프로그램 이야기라던가, 혹은 친구에게 들은 것으로 보이는 유머를 구사할 때가 있으셨는데, 반응이 좋을때면 칠판으로 반쯤 돌아서서 들키지 않게 살짝 흡족한 미소를 띄는 것이 "좋아! 오늘도 한건했어!"라는 반응 같았다.

 이날도 여전히 따분한 목소리만이 교실에 울려 퍼질때, 선생님은 오늘 준비해온 카드를 꺼내드셨다. "세상에는 셀 수도 없는 많은 의문들이 있지. 흔히 아주 어려운 것들을 생각하지만, 엄청나게 간단하면서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너희들 음악이 왜 즐거운지 아냐?" 물론, 중학생들이,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것을 생각하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는다. 도대체 이번 카드는 다음 패가 뭔지 예측이 힘들었다. 넌센스 퀴즈로 말도 안되는 정답일지, 답에 유머가 포함되어 나올지, 정말로 진지한 과학적 설명을 해주실지. 아무튼 평소에는 당연히 생각했던 것에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보려는 시도에 공감해서 많은 수의 학생이 선생님을 주시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로써 의도했던 효과의 절반은 달성. 자. 이제 마무리를 잘하면 되는 것.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와 음악의 리듬이 일치하기 때문이지. 미개한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는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흥겨워 하는 모습을 많이 봤을꺼야. 음악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출발했거든." 실망이다. 과학선생님 아니랄까바, 설명이 너무 논리 정연하고 "과연~" 감탄하게 되는 "AHA!"효과가 없다. 음악과 연결되면 뭔가 더 감성적일 줄 알았는데.. 선생님으로 향했던 아이들의 시선은 특별 한정 세일 마감을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아주머니들의 발걸음 처럼 제각각 산란되고 "으응~ 그랬을 수도 있지." 하는 납득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 오늘은 실패다. 나 역시 시시함에 고개를 다시 파묻었지만, 잠은 오지 않은 채 그 의문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음악은 도대체 왜 즐거운 것일까?"


 내가 라흐마니노프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책상 위에 있는 조그만 CD Player로 늘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를 했었는데, 라디오도 들었고, 팝, 락, 발라드, 클래식은 물론, 한국, 일본, 미국, 유럽 등등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음악들을 친구들에게 추천받아 듣던 시절이었다. 보통 학교에서는 가지고 다니는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집에서는 그 CD Player를 사용했었다.

 그날은 집에 있는 클래식 음반들 중 집히는 대로 한 개를 플레이어에 넣고 들으면서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과제를 하고 있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밖은 해가 지면서 어두움이 내리깔려 있었지만 흐린 날씨 탓에 새벽인지, 저녁인지 잘 구분이 안가는 상황이었다. 스탠드 램프 하나의 불빛만 밝힌채로 적막 속에서 한문제 한문제 낑낑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뚝, 내 노력의 결정체(!)인 종이 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양파 껍질을 벗길 때 처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서둘러 하던 과제를 치우고 화장실로 달려가서 거울을 보는데 빨갛게 충혈된 눈에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혀있었다.

 도대체 이 음악은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나는 어떤 생각도 안했는데, 단순히 어려운 과제로 머리가 뒤죽박죽인 상황이었는데도, 이렇게 만드는지 놀라웠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관객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 위해서 대편성의 현악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OST를 만들고 감동적인 대사를 쓰고 진짜처럼 터지듯 흐느끼는 연기자를 고용한다. 그리고는 예고편에서 극도로 절제된 힌트만을 주고 실제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정교하게 다듬어 마치 함정을 파는 스파이처럼 울음의 포인트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도 극장에서 "여기서 울라고 만들어 놓은 상황 인거야?"라는 생각을 팝콘을 씹으면서 태연히 하게 되는 영화가 대부분인 마당에 말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렇게 마법처럼 찾아와서 세상에는 이런 음악도 있다는 것을 어린 중학생의 감수성에 가르쳐주고 갔던 것이다. 그 후로도 이 음반은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즐겨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 내 마음 속에 찾아왔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는 꽤 오랜시간 동안 의문으로 남았다. 순백색의 결코 흐트러짐이 없는 정갈한 리듬 속에서 마치 샘물이 솓아나듯이 끊임 없이 깨끗하게 맑은 악상들이 겹겹이 쌓이는 2악장은 특히 좋아하는 부분.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2nd. Adagio sostenuto


 두 번째, 다시 라흐마니노프와 만난 것은 얼마전의 아침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스포츠 센터로 갔다. 40분의 조깅과 30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다소 차가운 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옅은 안개가 낀, 숨을 들이 마시면 촉촉한 공기가 마음을 적시는 그런 아침이었다. 스쿠터에 시동을 걸고 경쾌한 엔진소리에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아무도 없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 차가운 안개를 마시면서 말이다. 연구실이 있는 건물에 도착해서는 시동을 끄고 계단을 한칸, 두칸, 한칸, 두칸씩 리듬을 맞추어 올라가서는 내 자리에 도착. 연구실에는 왠일인지 사람이 없었고, 컴퓨터의 스위치를 켜고 자리 뒤쪽의 창문을 활짝 열어서 산 속의 신선한 공기를 가득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헤드폰을 쓰고 인터넷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방송을 클릭한다.

 재회의 무대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이었다. 특별히 유명한 3악장. 바쁘게 이메일을 확인하려 움직이던 손놀림을 그대로 멈추고 의자 뒤로 목을 받치고는 편히 기댔다. 그리고는 반바퀴 뒤로 돌아서 방금 열었던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공기를 한번 크게 심호흠 한 후에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리고는 눈을 감는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을 처음 만날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처음 데이트할 때의 기분처럼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가슴이 꽉막힌 듯 답답하고, 표현하고 싶은데 한발짝을 넘지 못하는 애절한 바이올린의 외침은,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은 데 소리치지 못하고, 사랑을 전달하고 싶은데 전달하지 못하고, 울고 싶은데 터져나오는 눈물을 눌러서 참고만 있는 그런 현실의 한계에 괴로워하는 인간 모습의 오마쥬다. 두 번의 클라이막스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듣는이를 탁 트인 초원, 거대한 자연에 대려다 놓고는 이 곳에서는 마음 껏 소리치고, 전달하고, 달려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는 오케스트라의 몰아치는 선율로 이렇게 해보라고 스스로 본보기가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만난 두번째의 라흐마니노프는 그렇게 격정적이었다. 단순한 방문자가 아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Rachmaninov, Symphony No.2 in E minor op.27, 3rd. Adagio


 내게 음악이 왜 즐거운지에 대한 답은 중학교때의 과학 선생님이 아닌 두번의 경험을 통해서 라흐마니노프가 가르쳐 주었다. 음악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이 그런 것 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문학이 그런 것 처럼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서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음악을 듣는 그 순간 만큼은 음악을 만든이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이 난다면, 그 음악을 작곡할때 작곡자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이유없이 웃음이 난다면, 음악을 작곡할때 흥겨움에 겨워서 작곡한 것이 틀림없다. 애절하게 가슴을 져미는 아픔이나, 거대한 상실 후의 허무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그러한 감정은 수년, 수십년, 혹은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 음악을 통해 듣는이의 마음 속에 그대로 와서 복제 된 것이다.

 어제 소설가 이외수씨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을 글을 쓰는 기교를 쌓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수양할 필요가 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 이유는 예술이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다른이에게 그대로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먼저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남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

 흔히 영화를 대리만족의 예술이라고 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영화속 주인공의 모습에 우리를 투영시켜 현실 세계에서는 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실제로 해 볼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고 한다. 꿈을 꾸면 우리는 원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즐거운 꿈에서 깨어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원하는 것" "꿈을 꾼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더 생생하고 (왜냐하면 음악은 중간의 어떤 감정의 전달자로서의 매개채가 상대적으로 없다) 더욱 더 편리하게 (음악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 되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음악이 '보관될 수 없는 공기의 울림'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가지는 대신 선택한 크나큰 장점이다.

 사람은 늘 활기차고 들뜬 감정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슬픔에 젖어, 또 때로는 화를 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행복은 늘 들뜨고 활기찬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분열되지 않고 하나의 균일한 마음에 충실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슬프더라도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슬픔 그 자체라면, 비록 화가 나더라도 시기심이나 두려움이 섞이지 않은 순수함이라면, 이런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자연스러운 마음이라면 결국 행복한 것이 아닌지. 마치 어린 아기일때만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행복한 감정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원하는 감정으로 가득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순수함으로 혹은 열정으로, 때로는 환희로 말이다. 그래서 원하는 음악을 들으면 행복하고/즐거운 것이다.  


 10월 9일에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매우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준 이반 피셔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내한한다는 소식에, 갈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미 합리적인 자리들이 다 차버렸기 때문에 한발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음반에서 들려준 역량의 절반만 발휘해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싸우고 있다. 빈필이 이벤트성으로 와서 "세상의 아름다운 클래식 100선" 이런 레파토리를 들려주는 공연보다는 훨씬 값어치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비싸다. (ㅠ _ㅠ) 예술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분이라면 감히 비싼 돈 주고 가서 들어도 후회가 없으리라고 생각. 초대권도 좀 사라지고, 그래야 싸게 가서 듣는 사람 티켓 값도 좀 싸질 텐데. 고민중. 고민중.

Posted by Hwijung

2007/07/19 12:21 2007/07/1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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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으세요? 그러면 말러를 들으세요

울고 싶을때는 20세기 후반들어 새롭게 재발견된 작곡자 말러의 곡을 들어보세요.

하얀 눈처럼 빛나는 서정성으로 감동과 눈물을 주는 슈만 같은 작곡자도 있는 반면에
절망과도 같은, 저 깊은 심연으로 내려가는, 끝없이 침전되는 슬픔의 눈물도 있습니다.

바로 말러가 대표적인, 그런 느낌을 주는 작곡자 중의 한명이지요.
그의 교향곡으로 대표되는 음악 레퍼토리 중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나 , 9번의 4악장
아다지오를 들어보면 고개는 절로 숙여지고 웃음을 잃게 됩니다. 딱히 심각한 생각을
하게 되지도 않고, 아니 할수도 없게 되지요. 단지 무거운 슬픔이 마음을 억눌러 답답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단념과 숙연함만 있는 거지요.

이 느낌은 바로 죽음의 공포에 억눌리는 바로 그 것 입니다.

음악은 생명체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아주 본능적인 공포를 건드리기 때문에 매우 호소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겪고 난 후의 느낌은 카타르시스라고 하나요.
바로 정화된 영혼. 죽음의 반대편에 항상 붙어있는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느끼면서
한결 성숙되고 상쾌한 기분을 불러오게 됩니다.

과장되어 말하면 20세기 후반을 양분했다고 할 수 있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은 위에서 언급
한 두 악장에 대해서 각각 높게 평가되는 공연을 했고 이 실황을 레코딩으로 남기고 있는데요.
20세기 후반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작곡자에 대해서 두 거장의 한치의 양보도 없이 명연을
펼쳤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9번(1982)
번스타인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5번(1987)

Posted by Hwijung

2006/11/23 23:48 2006/11/23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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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쾌락

토익, 토플 MP3 들과 친해져볼려는 마음에 음악을 멀리하는 요즘이지만 다른 것 들은
버리고 참을 수 있어도 클래식 음악과는 멀어지기가 참 힘들다.

중학교 때인가 '클래식의 쾌락'이라는 클래식 음악의 입문서를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왠지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본능에 충실한 욕구 표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쾌락'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고
이런 저런 Classical Music(이 정확하다)을 듣다보니까 과연! '쾌락'이요 '환희'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보통 음악을 가장 많이 듣게 되는데, 이 때의 삶이 한가하기 때문이
기도 하고 감수성이 예민하여 조그만 외부 자극에도 강한 정서적인 쾌락을 얻기 때문이
기도 하고 또래 친구들로 인해서 다양한 음악을 추천받고 들어볼 기회가 있기 때문이기
도 한 것이다. 하지만 살펴보면 주로 듣는 음악의 스펙트럼이라고 해야하나, 어떤 장르
의 일관적인 묶음이 있는 것이고 다양하지만 그 내부에서의 움직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음악에 포함된 어떤 리듬과 악기에 본인의 선호가 있기 마련이고 그를 쫓아가는
청취가 있기 때문일 것 같다. 헤비메탈과 재즈를 양쪽 다 심도있게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명백하게 편중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 기억속의 나의 모습에는 다양한 음악들을 접해왔지만 항상 왼손에는 클래식을
기본으로 깔고 다른 음악에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새로 취미
를 붙인 음악이 싫증나도 클래식을 선호하는 마음에는 영향이 없다. 이는 현대 음악의
뿌리가 클래식에서 파생되어 왔다는 점 때문에 부모와 자식은 양립할 수 있어도 자식과
자식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름의 생각이다.

흔히들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듣지 천박한 대중 음악은 안들어." 라거나 "주제도 모르고
클래식 음악이라니 잘난척 하려는 것이 분명하군." 이라던지. 어느쪽이던 클래식 음악이
주는 어떤 묵직하고 천박하지 않은 가치에는 동감을 하고 있으니 약간 비틀어서 그러한
특징은 단지 음악이 주는 느낌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음악외의 요소를 보지 않으면 더
쉽게 클래식 음악에 다가서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나는 몇가지 이유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우선 공부하면서 듣기에는 대중가요 보다
좋다. 가사. 즉 언어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표현 방법이 훨씬 더 직접적이 된다. 즉 내가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말이 되고 이는 정신 집중에 방해가 된다. (물론 공부할 때는
음악을 듣지 않는게 가장 좋지만) 그리고 대중 가요에는 음악이라고 보기 힘든 부분이
많다. "이번 곡의 컨셉은 가수의 이미지 변화를 위해서.." 이런식으로 시작한다면 이미
그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보기 좋은 포장지 정도다.

(사실 대중 가요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몇개 안된다. 우리나라 음악 시장의 70~80%
는 대중가요. 그리고 남은 부분을 뉴에이지, CCM, 인디음반, 클래식 등이 나눠먹고 있는데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공간감이랄까 인간미 같은 것을 찾는 잔재미랄까. 라이브 레코딩을 들어보면 연주자의
자잘한 실수. 숨소리. 심지어 피아니스트의 허밍까지. 음반마다 나타나는 이러한 잔재미라
의외로 재미를 준다.

또 같은 곡에 대해서 여러가지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재미있다. 다른 많은 음악에서는
마스터 테이프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걸 변형시킬 경우 편곡이라는 개념이 들어가지만
클래식 음악에서는 작곡가의 악보가 절대적이고 그에따라 해석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어떤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하면 그 음악과 자신의 마음의 울림이 공명하는 탁월한
해석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내가 50살이 되고 60살이 되었을 때 지금 들었던 클래식을 또 들을 수 있다면 꽤 행복할
것 같다. 지금 듣는 음악들에 일상 생활의 단상들을 연결 시켜놓고 먼 훗날에 같은 음악을
꺼내어 듣는다면 좋지 않을까. 마치 일상 생활에 책갈피를 끼워놓는 것 처럼 말이다.

어떤 다수의 '시퀀스'가 하나로 통합되어 치밀하게 맞아 들어가는 작곡자의 실력을
공학도의 측면에서 찾아 내는 것도 흥미롭다. 사실 이건 클래식 만의 특성은 아닌데
모든 클래식이 이렇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질주하는 오케스트라지만 치밀하게
서로를 의식하면서 정확하게 의도된 타이밍을 찾아내는 실력을 최고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 클래식에 관한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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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5 17:48 2006/11/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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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

 시험기간에 공부에서 멀어지려는 척력을 흡수하고자 보기 시작했는데, 은근 재미있다!
만화책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말러 천인의 교향곡! 하면 바로 CD를
뒤적거려 CDP에 넣고 다시 보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 하면 또 CD를 넣고;
음악이라는 것이 심취해서 볼 수 있는 좋은 도구도 되고 말이다.

  드라마로도 제작 된다길래 기대하고 있음~

덧붙여 최근에 심취해 있는 클래식!
부르크너 7번 교향곡, 말러 9번 교향곡, 프로코피에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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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1 03:17 2006/10/21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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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주말 저녁에 할인도 안되는 가격으로 봤건만.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준 사건의 조각들로 꽉 짜여진 톱니바퀴 같은
구성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말초적인 대사들로만 채워진 영화.

나이를 무색케하는 김혜수씨도 그렇고,
백윤식씨 케릭터라고 단언할 수 있는 그 모습도 그대로고,
유해진씨도 변함없는 입담을 과시했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평점 별 5개 만점에 2개 반;
흥행에 성공한다고 다 보러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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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0 00:06 2006/10/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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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Ashkenazy In Moscow with Andrei Gavrilov

Sergei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Andrei Gavrilov/Piano
Vladimir Ashkenazy/Direction

  요즘에는 아쉬케나지가 피아노를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새로 구입한 휴대폰에 넣어서 듣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귀에 더 익숙한 것은 아쉬케나지의 지휘로 1989년에 모스크바에서 실황녹음 된, 집에 가지고 있는 바로 이 음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꼽으라면 쉽게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데, 아마 한참을 생각한 뒤에 나온 대답 마져 하나를 꼽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그, 모짜르트, 라흐마니노프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무엇을 가장 많이 듣냐고 누가 물으면 단연코 라흐마니노프 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곡이 아닐까 싶다. 영화 '샤인'으로 3번이 알려지고 그 난이도로 주목받지만 역시 전통의 강호 2번을 따라잡지는 못한다고나 할까. 그 특유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1악장부터 끊임없이 신선함을 주고 2악장의 말미에 가면 가만히 마음을 비우고 듣고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감동을 선사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 음반은 꾸준히 들었는데, 처음 들었을때의 감동이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느껴지는 것을 보니 명곡의 생명력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곡도 몇 년 후면 초연된지 100년이 된다.

아쉬케나지가 지휘봉과 피아노 양쪽을 잡은 쪽을 비교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지휘봉을 잡은 음반 쪽을 더 좋아하는데 아쉬케나지의 강인한 피아노 연주보다는 가브릴로프의 섬세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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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6 00:51 2006/09/26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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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건사고 (今日のできごと)

이런 영화 좋다.

영화 전체는 하루동안의 일이다. 아주 느린 템포로 진행되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생략이나 축약이 없다.
친절한 영화라는 느낌이 들어서 나조차 호의적으로 변한다.

과장이 없다. 내가 저 상황이었어도 저런 대사를 읊었을 거라고 생각이 된다.
삼국지 게임을 하고, 만화책의 다음 권을 달라고 말하고.. 영화가 아니라 현실로 보였다.

무리하지 않는다. 고래를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냥 음향효과와 돌아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 가능하다.
자전거 사고를 연출할 필요도 없다. 그냥 소리와 넘어져 있는 사람으로 충분하다.
CG를 쓰거나, 실제 처럼 동작하는 거대한 모형보다는 오히려 그쪽이 충분하다.

위트는 분명히 목적이 있다. 재자리를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 것은 아니지만, 한걸음씩 조용히 걸으며 씩 웃음 짓게하는 대사들이 있다.

기대 없이 보아서 좋았고, 영화관에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이래저래 괜찮은 문화생활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곧 영화관이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거대 멀티플랙스 영화관들만 살아 남고 비교적 인기 없는 영화들은 점점 더 볼 수 없게 되어가는 것이 안타깝다.

이케와키 치즈루는 조금 나왔지만, 가장 강렬한 인물. 영화가 끝나면 그 사투리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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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6 01:54 2006/04/26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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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月 9日 - 레미오로맨

항상 오래 기억에 남는 곡을 보면 곡 자체가 정말 좋아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다른 기분 좋은 추억과 연관된 경우에 더욱 그렇다.
드라마 1리터의 눈물 삽입곡으로 정말 가사와 내용이 잘 어우러지는 3月9日.
당분간 버닝-_-! and 피아노 연습-ㅂ-!


3月 9日 - 레미오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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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01:29 2006/04/19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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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의 칼날

과학사 에 관한 에세이 라는 부제가 붙어있던 듯.

과학사라는 학문도 있는지 생소했지만 생각해보면 뭐든 뒤에 史를 붙이면 학문이 되긴 된다. 과학, 정치, 경제, 인류 등등등 -ㅅ-


암튼 그 중에서도 서양의 과학문명 발달의 과정을 따라가면서 중대한 사건, 인물을 소재로 구성되어있다. 복잡한 과학 내용은 별로 나오지 않고 '에세이' 라는 표현에서도 느낄수 있듯이 그 커다란 흐름을 인물들로 꿰어 맞춘다고나 할까. 편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오히려 인문계열의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

요즘은 이러한 커다란 대상을 굵직굵직하게 마디를 지어주는 책들을 일부러 골라서 읽고 있다. 예전에 포스팅되었던 교양이라는 책도 그런 종류인데 그 보다는 약간 구체적인 한 대상에 대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듯 해서 도서관에서 골랐다.

서양 과학 발전의 흐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면 아주 도음이 될 만한 책~

다만 좀 지루하고, 작가가 위트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너무 애매한 문학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 그리고 페이지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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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4 22:12 2005/11/14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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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마아야 New album~

쇼넨 아리스(?)가 나온지 얼마 안된거 같은데 벌써! 새 앨범이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견한다. 쪽 보다는 좋아했던 아티스트의 새 음반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편이 월등히 많은데. 역시 사카모토 마아야도 후자의 대표격이랄까. 늘 새 음반은 기대하면서 받아서 당분간 즐겨 듣게 된다.

이번 앨범도 10년전부터 여전한 목소리의 여전한 상쾌함이지만 아쉬운점이라면 칸노 요코 프로듀스가 아닌; 완전한 J-POP 스러움. 역시 사카모토 마아야 - 칸노 요코 콤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OTL

4번트랙 무한반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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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7 21:25 2005/11/0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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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W! 이제 쉬엄쉬엄 하자.

계정비 아깝다고 광랩하다보니(나름대로) 계획대로 돌아가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꺠닫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아니다 싶은 기분.

잠시. 적어도 방학 때 까지는 좀 쉬던지 해야겠다.

Posted by Hwijung

2005/10/31 22:49 2005/10/31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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